<편집자의 말>
아름다운 사람을 그리는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지는 까닭은 세상이 날이 갈수록 살벌하고 험악해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좋은 세상을 꿈꾸는 마음…
좋은 세상이 올까? 기쁨과 슬픔과 따듯함과 선선함이 있고 다채로운 인생 드라마들이 쉼 없이 돌아가는 곳,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 그런 좋은 세상을 맞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이라고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그런 좋은 세상이 되겠지요. 그렇게 믿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오래도록 칭송받는 까닭은 육체적 아름다움 못지않게 정신과 마음도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오드리 헵번(Audrey Kathleen Hepburn, 1929~1993)이라는 말라깽이 미인의 등장은 신선한 문화 충격이었다.
마릴린 몬로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비롯하여 BB니 CC니 소피아 로렌 같은 글래머를 미인으로 알고 있는 세상에 혜성처럼 나타난 비쩍 마른 수수깡 미인이 풍기는 매력은 오랜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새로운 미인의 기준을 제시하며 영화배우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배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은퇴 후에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는 아름다움을 실천했다.
오드리 헵번을 수식하는 찬사는 너무도 많다.
살아 있는 천사, 우아한 스타일리스트, 요정, 청순미, 깜찍, 발랄, 모태(母胎) 미인, 만인의 연인, 패션의 아이콘, 세월이 흘러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 아름답되 이지적이고, 우아하되 기품이 넘치는 여왕 같은 이미지….
성공한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할리우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미녀 배우였으며, 20세기 대중문화와 패션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긴 설명 필요 없이 출연한 영화 제목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로마의 휴일>(1953), <사브리나>(1954),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샤레이드>(1963), <마이 페어 레이디>(1964) 등…
첫 출연작인 <로마의 휴일>로 단숨에 세계적 스타가 된 헵번은 평생 20번의 배역에서 주연을 맡아 빛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작품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1989년작 <Always>, 배역은 천사 역이었다. 공주 역으로 시작한 그녀의 영화 인생은 천사 역으로 막을 내리고,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첫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녀의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미국 연예계에서 에미상, 그래미 어워드, 아카데미상, 토니상을 모두 수상한 배우는 12명밖에 없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오드리 헵번이다. 베스트 드레서 부문 '명예의 전당' 여성 배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또한, 캐서린 헵번과 베티 데이비스에 이어 미국영화협회(AFI)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성 배우> 3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7년에는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코망되르를 수상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봉사활동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였다.”
오드리 헵번은 은퇴 이후 유니세프의 난민 구호활동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1988년, 유니세프의 국제 친선대사로 임명된 오드리 헵번은 어린이를 돕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했다.
보수는 1년에 단 1달러, 교통비와 숙박비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는 형편없는 대우였지만, 그녀는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봉사활동에 헌신했다. 세기의 여배우, 은막의 스타가 어린이들의 천사로 환생하여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의 참상을 지구촌에 알린 것이다.
이런 헌신적 사랑의 실천으로, 그녀는 지금까지도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추억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기간이 길지 못했다.
그녀가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게 된 이유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네덜란드에서 궁핍한 생활을 할 때 유엔 구호기관으로부터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받은 인연 때문이다.
“저는 유니세프가 전 세계 어린이를 위해 하는 일을 깊이 신뢰하며 감사하고 있어요. 유니세프는 전 세계 어린이에게 큰 희망이라는 건 제가 보장할 수 있어요.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직후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어린 오드리 헵번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산에서 튤립 구근을 캐 먹고, 전쟁터의 빈집에서 상한 식재료들까지 먹어야 했다. 한때는 키 170cm인 그녀의 몸무게가 39kg일 정도였는데, 이는 위험한 영양실조 상태라고 한다.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굶주린 오드리 헵번은 유니세프의 전신인 <유엔구제부흥사업국>이 전해준 긴급구호 물자, 영양식을 먹고 꺼져가는 생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인해 오드리 헵번은 전쟁이 끝나고 연기와 발레를 배워 배우가 된 이후에도 각종 만성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렇게 어린 시절 유니세프에게 받은 도움을 전 세계 어린이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하고 활동에 앞장선 것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어린이들이 고통받는 곳엔 오드리 헵번이 있었다. 그녀는 비행기와 버스, 낡은 트럭을 얻어 타고 아프리카 전 지역, 서남아시아의 방글라데시, 중남미의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을 찾아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살려냈다.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이 축복”이라며 질병에 신음하는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끌어안고 고통을 함께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 천사를 보며 인류의 양심도 함께 울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800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 소말리아... 여정 내내 그녀는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지만, 참으면서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계속하며 목마름과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어린이에게 아름다운 손길을 내밀었다.
소말리아 방문 후, 병원을 찾은 오드리 헵번은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봉사활동을 한 탓이었다.
명망 있는 의사들이 이 천사를 살리기 위해 나섰고, 큰 수술을 받았지만, 암세포가 몸 전체로 퍼진 상태여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었다.
1993년 1월 20일, 오드리 헵번은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름다웠던 생을 마감했다. 향년 63세.
그날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날이었다. 그를 조문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새 천사를 갖게 됐다.”
유엔과 민간단체 <세계평화를 향한 비전>은 오랜 기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인류애를 실천한 그녀를 기리기 위해 2004년 2월 <오드리 헵번 평화상>을 제정했다.
아들 션 헵번은 고인의 뜻을 잇기 위해서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을 설립하여 전 세계의 아이들에 대한 구호사업을 펼치고 있다. 다른 가족들도 재단의 사업을 돕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세월호 참사 때 희생당한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월호 기억의 숲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일러주는 아름다움의 비결 >
Time Tested Beauty Tips -샘 레벤슨(Sam Levenson)-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다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다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갖고 싶다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가지고 싶다면
결코 너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회복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만약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라.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알게 되리라.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오드리 헵번의 유언이라고 알려진 이 시는 헵번이 좋아했던 시인 샘 레벤슨(Sam Levenson)의 시로, 숨을 거두기 1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두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편집자 주>